지난 해 인터넷팀에서 일을 핑계삼아 '업무중 서핑'을 대놓고 즐겼던 저는 사회부 사건팀인 지금도 그 버릇을 못 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사안에 따라 가끔은 인터넷에서 쓸만한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서핑이 업무와 절대로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요점은 바쁜 일이 있을 때도 한가롭게 업무와는 관계없는 서핑을 하느냐인데, 저는 그럴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한 배포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서핑을 할 때 제가 가는 곳은 사실 몇몇 사이트로 한정돼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요 포털의 뉴스와 댓글을 읽는 정도였는데,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찾아낸 '거대 커뮤니티'들입니다. 어디라고 밝히기는 좀 쑥스러우니 그냥 '야구 좋아하는 사람들의 게시판'와 '차 한 잔 하면서 DVD보는 사람들의 게시판'정도로 해 두죠.(이 두 곳은 사실 꽤 유명하니 '아, 거기구먼'하시는 분들도 꽤 많으실 겁니다.^^)
가끔 그런 게시판에서 올라온 글을 읽다보면, 불편한, 그러나 읽을 수 밖에 없는 글들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에 대한 불신, 특정 언론사에 대한 비난 같은 글입니다. 그 글들은 때로는 내부에서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을 아프게 지적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분석으로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지만, 또 때로는 (당하는 입장에서) 좀 억울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 화살이 제가 몸담고 있는 회사를 향하고 있을 때, 생각 같아서는 당장 로그인해서 사실은 이렇습니다,라고 댓글을 달고, 논박하고 싶지만 어차피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서 익명으로 제기되는 의견이니까 오히려 이쪽이 남우세스러워질 테죠.
최근에는 SBS가 기획한 '우주인 방송'이 네티즌들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정부가 국민 세금을 한 사람의 이른바 '우주 관광'에 썼다, 그 과정을 지상파 방송사가 '오버'해서 중계하면서 '전파 공해'를 만들어냈다...게시판의 글들은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날선 단어들로 채워져 있었고, 그 과정에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도 난무했습니다. 그 글들은 마치 '혓바늘' 같아서, 쓰리고 아프면서도 끝내 건드려 보고야 마는 어두운 마력이 있었습니다.
다만, 비판 뒤에 이어져야 할 대안이 극히 부족하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한국최초 우주인 사업에 대한 비판과 붐업(boom-up)을 위한 방송에 대한 비판을 하나로 뭉뚱그린 '통합의 능력'이 놀라웠습니다. 조목조목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판 보다는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비난에 '묻어가는' '일부' 네티즌들의 속성이 더더욱 실망스러웠습니다.
솔직히 이번 '우주인 방송'은 사내외 공통적으로 날카로운 지적을 받았습니다. 보기는 많이 봐 왔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고, 현지 취재 시스템의 문제도 있었지만, 역시 '처음'이라는 미숙함이 크고 작은 기술적 실수로 이어진 부분이 일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용 보다는 방송의 '총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주관 방송사로서 이 정도 규모의 행사를 남의 일 보듯 흐지부지 지나쳐 보낼 수는 없다는 것도 고민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송을 떠나 '한국최초 우주인 사업'을 국고낭비로 매도하는 시각은 주관방송사에 근무하는 일개 기자가 아니라 '납세자'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국고낭비는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경쟁력없는 공기업에 정치적인 이유로 포도당 링거를 주사하듯 무더기 예산을 책정하거나, 선거 공약을 실천한다는 빌미로 쓰지도 못할 유령공항을 만드는 것 같은 정책을 비판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예전에 <뉴스추적>에서 방송을 제작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이번 우주인 사업은 투입 대비 산출(가능성)이 훨씬 클 수도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주인 사업이 공기업 회생이나 지방공항 건설과는 달리 우리의,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또 백 권을 책을 읽고, 백 시간의 수업을 들어도 얻지 못할 소중한 경험을 우리에게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우주정거장에서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전송되는 인사를 들으신 적이 있으십니까? 한국인 이소연씨가 캠코더를 들고 설명하던 우주정거장의 내부를 기억하십니까? 카메라 셔터같은 창문을 돌려서 열면 태양전지판 아래로 펼쳐져 있던, 말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푸른 지구를 생생한 동영상으로 보셨습니까? 멋대로 뿌리를 뻗어 사방으로 자라던 콩나물과, 무중력 상태에서도 앵앵거리며 가열차게 살아 움직이는 초파리들을 보셨습니까?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나 보던, 그것도 제한적으로 찔끔찔끔 나오는 외국의 자료들로만 접하던 화면들을 TV에서 모두가 함께 본 적이 있으십니까? 집에서, 일터에서, 가족들과, 친구들과 이처럼 생생한 우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이 예전에는 있으십니까?
지구에서도 동북아시아 한 귀퉁이, 좁은 땅덩이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며, 몇 제곱미터 안 되는 집값의 등락과 부쩍 오른 물가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우리지만, 잠깐이라도 우리 머리 위의 공간에 대한 관심을 작은 사치처럼 누리며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저 너머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를 상상하는 것. 이번 한국최초 우주인 사업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요?
모두가 우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는 당연히 없습니다. 소유즈-TMA가 이전의 소유즈와 무엇이 다른지 줄줄 꿰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언젠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과 오에 겐자부로의 '치료탑/치료탑 혹성'에 대한 얘기(클릭-새창)를 다른 블로그에 쓴 적이 있습니다만, 작은 상상이 우리의 팍팍한 삶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대'로 남을 수 있다면, 또 늘 바쁜 일상이지만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저 너머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뜻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상상의 결과물들을 우리 글로, 우리 말로, 우리가 그린 그림과 우리가 찍은 영상으로 풀어내 모두와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들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누군가의 말은 TV에서 생중계되는 우주의 모습을 본 지금의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한 동안 우주는 힘 있고 돈 있는 강대국들의 무대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 동안 우주에 가려면 그들에게 기대어, 말 그대로 '다리라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한 동안 항공우주기술은 그들이 주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한국최초 우주인 사업은 우주를 '영원히 그들의 영역'에서 '언젠가는 우리의 영역'으로 끌어 올 수 있다는, 끌어 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시작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2008년 4월 17일 SBS 기자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