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정치의 계절'인가 봅니다. TV도, 신문도 모두들 다가오는 4.11 총선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특히 4월 총선에 이어 연말에 대선까지 치르는 올해는 어느때보다 정치판에 큰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서 이런 관심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러다보니 이미 총선 예비후보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관심 지역의 여론 향배가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짊어진 문재인 민주통합당 고문과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겠다는 문성근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이 일찌감치 뛰고 있는 부산·경남, 이른바 PK 지역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이번 주 들어 몇몇 신문이 PK 지역의 민심을 전하는 기사를 썼습니다. 현지에서 '전송'된 이 기사들은 지역 유권자들이 최근의 정치상황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발언 내용을 큰 따옴표로 잇따라 옮기는, 이른바 '인용 보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인용한, 즉 큰 따옴표 안에 있는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뭔가 특이한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 번 보시죠. 지난 2월 13일, J일보 6면에 실린 "PK 가보니…'문재인 좋아해예, 박근혜는…"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큰 따옴표로 인용된 부분을 표로 정리했습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바로 '사투리'입니다. 굵은 글씨로 표시해 뒀지만, 일부 발언에 사투리가 그대로 인용돼 있습니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사에 그대로 담았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데요, 특이한 것은 유독 '야권 성향'의 발언에만 사투리가 노출돼 있다는 겁니다. 야권 지지 성향의 발언이지만 사투리로 인용되지 않은 경우는 '덕천로터리 이기근씨'의 "안 원장에 관심이 많다"라는 인터뷰와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의 "김(두관) 지사가 인기가 많다"는 인터뷰 정도입니다.
특이한 점은 또 있습니다. 표 마지막에 '김해에서 만난 김광빈씨(*)'의 인터뷰를 보시죠. 김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기사 중간에 '봉하마을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만난 김광빈씨'로 이미 한 번 인용돼 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난 분이 아니라서 완벽하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봉하마을이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동일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한 번은 '봉하마을 근처'로, 한 번은 '김해'로 썼다는 점만 다른거죠. 그런데 신기하죠. 이 분이 '안철수 교수'에 대해 한 긍정적인 평가는 "안철수가 낫다 카는데"라며 사투리 그대로 인용됐고,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위에서 보듯이 표준어로 인용됐습니다.
다시 시선을 제목으로 돌려봤습니다. 이런 특이점을 마치 예고라도 한 듯 합니다. 문재인 고문에 대해서는 "좋아해예"라고 사투리를 노출시켰고 박근혜 위원장은 말줄임표로 마무리했습니다. 이쯤 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기사 초반에는 사투리를 인용하면서 현장성을 부각시키다가 기사 말미로 갈수록 초반의 의의가 퇴색됐다고 판단해서, 원래 사투리로 돼 있던 인터뷰 내용을 표준어로 바꿨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게 마침 '돌풍의' 야권 지지 성향으로 시작해서 '전통의' 여권 지지 성향으로 끝나는 기사의 흐름과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죠. 기사를 수정하는 '데스킹'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제가 가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는 깨달음을 달라고 메일을 보내 문의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아무런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15일 M일보 4면의 기사에도 짧게나마 비슷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PK지역의 민심을 취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준게 뭐 있노, 바꾸제이~' vs '투표함 열어봐야 안데이~'"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기사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계속 찍어줬는데 한나라당(새누리당)이 해준 게 뭐 있노. 이번엔 바꿔야 한다."
"야당 바람이 분다지만 투표함 열어보면 또 모른다."
기사에서 해당 발언을 한 인터뷰이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시 야권 지지 성향의 발언은 "해준 게 뭐 있노"라며 사투리로 인용돼 있고, 여권 성향의 발언은 표준어로 돼 있습니다. 기사 제목은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모두 사투리로 인용돼 있습니다만, 기사 본문에 들어가 보면 여권 지지 성향의 내용은 정색을 하고 표준어로 적혀 있는 겁니다.
사투리 보도, 왜 위험한가?
개그프로에서 자주 보는 '흉내' 단계를 넘어서, 사투리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짧지 않은 한국정치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투리 가운데 하나로 누구나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발언입니다. 지난 19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지역의 정부 기관장들이 한 복요리 식당에 모여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씨를 당선시키자고 논의한 내용이 경쟁 후보측에 의해 폭로됐습니다. 이때 기관장들의 발언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된 내용이 바로 "우리가 남이가"입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폭로자의 당초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여당 후보의 지지세력이 결집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기관장들이 모여 관권선거를 모의했다는 '팩트'보다는 거주지 침입과 불법 도청을 실행한 상대 후보측에 대한 윤리적 비난 여론이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거세게 불타올랐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 마디 말이 가진 힘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만약 이 발언이 "우리가 남이냐", 또는 "우리는 남이 아니잖아"라는 표준어로 보도됐다면, 과연 그만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언론에 활자로 인용되는 거의 모든 공적 영역의 발언은 발화자의 언어사회적 배경과 관계없이 '표준어'로 인용되는 것이 기본입니다. 사투리가 심한 정치인이나 학계 인사도 말이 아닌 글로 발언이 인용되면 '표준어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투리라는 '형식' 때문에 논점이 흐려지거나 다른 해석을 낳게 하는 것을 피하고, 발언 내용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입니다.
활자 언론의 사투리 보도는 지역의 의미있는 정치적 움직임을 '그 지역만의 것'으로 눌러 앉힐 수도 있고, 지역 유권자들의 소신있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방해하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말'이 아닌 '글'로 전해지는 사투리는, 이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로 폄하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이 지점에서 2차, 3차의 오해와 갈등이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활자 언론을 신중하게 읽은 독자들 가운데 다만 일부라도 '아, 그렇구나'라는 느낌이 아닌 '이거, 뭔가 있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면, 기사가 당초 전달하려고 한 의도마저 퇴색돼 버리고 맙니다. 이쯤 되면 기사가 반드시 담보해야 할 '중립성' 측면에서 해당 기사를 높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오늘 날짜가 눈에 익어 생각해보니 17년전 오늘, 즉 1995년 1월 17일은 일본에서 고베 대지진이 일어난 날입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한신·아와지 대지진, 혹은 고베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으로 일본에서는 6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숨지고 당시 일본 국내 총생산의 2.5%에 해당하는 10조엔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고베 도심을 강타한 직하형 지진으로 철도와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의 피해가 심각해 복구에 많은 인력과 재화가 투입됐습니다.
지진이 일어난 날은 제게도 좀 특별한 날이라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당시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고3 수험생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수능과 내신 외에도 일부 대학들에 한해 본고사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가-나-다' 3개 군으로 나뉘어 본고사를 치렀는데, 지진이 일어난 1월 17일은 마지막 '다 군'의 시험날이었죠.
'다 군'에서 제가 본고사를 치른 학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였습니다. 이미 '나 군'에서 고려대학교 본고사를 봤고, 확신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시험에서 좋은 예감을 받은 터라 마지막 날의 외국어대학교 시험이 큰 부담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단 시험 정도는 봐 두자.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새벽에 인천 집에서 서울행 국철을 타고 거의 2시간에 가까운 먼 거리를 이동해 회기역에 내려서 털레털레 오래된 상점가를 지나 외대 어딘가의 교실에 들어가 묵묵히 시험을 보고 나왔습니다. 과목도 영어 하나라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나름 영어는 자신있는 과목이었지만 시험과목이 하나라서 오히려 여러 과목일 때보다 합격권에 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후회해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지는 지문을 읽고, 적당한 답을 찾고, 마킹을 확인하고, 다음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험 시간을 제외하고는 포터블 레코더의 이어폰을 늘 꽂고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다시 온 길을 되짚어 회기역으로 향하다가, 문득 배가 고파졌습니다. 점심시간이었거든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외대 교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넌 뒤 회기역으로 향하는 길은 3~4층 정도 되는 낡은 상가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도심의 전형적인 역세권 상가지역이었습니다. 구멍가게와 화장품가게, 문구점, 레코드샵, 선물가게 같은 이런저런 소규모 점포들이 너나할 것 없이 판매대를 인도에까지 내놓고 영업을 하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분식집과 고깃집 들이 끼어있었습니다. 두 집 건너 하나 꼴로는 2층의 호프집과 술집, 노래방으로 올라가는 계단들의 검은 입구가 인도에 바싹 붙어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길의 중간쯤에 있는 한 분식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만두를 찜통째 찌는 곳이 인도 쪽으로 살짝 나와 있었고, 찜통의 열기인지, 주방의 불 때문인지 내부는 따뜻하다 못해 후텁지근했습니다. 안경이 금세 뽀얗게 변했습니다. 자리가 다 차봐야 스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분식집이었습니다.
구석에 앉아 라면과 김밥 한 줄을 주문하고, 외투를 벗어 옆의 의자에 걸치면서 주변을 티안나게 둘러봤습니다.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들어온 입구를 바라보는 자리에 앉았는데, 시야의 오른쪽 위에 작은 TV 수상기가 들어왔습니다. 가만히 보니 모두들 TV를 보거나, 음식을 먹으면서도 TV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TV에서는 뭔가 거대한 구조물을 위에서 촬영한 듯한 부감샷이 흐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부서진 '도시'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귀에서 이어폰을 뽑았습니다. 그때 TV에서 '특별방송' 형식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고베 대지진'이었습니다.
그때 TV에서 흘러나오던 기자나 아나운서의 보도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조나 목소리에서는 어렴풋하게 '이건 그래도 큰 일이니까 이렇게 보도하고는 있지만,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잖아. 왜 이런 걸 해야 하지?' 하는 무관심(혹은 외면이나 안도)가 느껴졌습니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그 역시 어쩔 수 없습니다만, 제게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역시 지진이나 화산폭발은 한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직접 경험할 일이 없는 일이니까요. TV에서 흘러나오는 심드렁한(그렇게 들렸습니다) 목소리가 묘하게 마음의 표면을 긁었습니다.
왜일까요. 당시에는 그저 지나쳐버린 감정이었지만 그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입시라는 인생의 몇 안되는 변곡점을 간신히 통과한 수험생으로서, 제 앞에는 적어도 지난 세월보다는 많은 자유와 기회의 예감이 안개처럼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걸 보는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마치 힘든 항해의 막바지에 이르러,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 어렴풋이 항구의 따뜻한 불빛이 어른거리는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아마도 배는 조용히 바다를 미끄러져 얼마 지나지 않아 항구로 들어갈 테고, 그곳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았습니다. 만약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에, 혹은 서울에 저 TV에서 보는 것 같은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저는 아마도 너무 억울해서 머리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는 생각을 현실에서 그대로 마주했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저 도시의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에 마음이 쓰였습니다. 그런 건 아마도,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겠죠.
저는 그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 한 줄을 다 먹고, 돈을 내고 거리에 나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회기역에서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TV를 켜고 묵묵히 특집보도를 지켜봤습니다. 귀가하는 도중에 다른 생각들을 하느라, 분식집에서 느꼈던 옅은 분노, 혹은 걱정은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일상은 그 뒤로도 잔잔하게 흘러갔고, 며칠 뒤 고려대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외대 본고사를 본 날의 기억따위, 그런 우울한 기억 따위는 그냥 속으로 모두 지워버리는 게 가능했습니다.
제가 회기역과 외대 정문을 잇는 그 길을 다시 오가게 된 건 병역을 마친 뒤, 고려대 근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세가 싼 외대 후문쪽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그게 2000년 1월의 일이었으니, 정확하게 5년이 지난 거죠. 아무 생각없이 상가 건물들을 지나치다가도, 가끔 외대에서 본고사를 치른 1995년 1월 17일의 일들이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러면 안되잖아'하며 비난했던 기자와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문득문득 되살아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건조한 목소리는 저에게 어떤 의미에서는 '소식을 전하는 자'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반면교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대 후문 반지하의 어두운 자취방에서 하루 하루를 씹어 넘기면서 어찌어찌 언론사 시험준비를 했고, 다행히 1년 반 뒤에는 방송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 11일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동일본을 강타했습니다. 이번에는 고베-한신 지역이 아닌 동북지방이었습니다. 일본으로서는 고베 대지진 이후 16년만의 큰 재해였고, 저는 회사에 꾸려진 특별 취재팀의 일원으로 현지에 파견됐습니다. 회기역 근처 작은 분식집에서 고베 대지진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기자의 말투에 불편해하던 제가 어느덧 그 자리에 서게 된 겁니다. TV를 통해 방송된 제 목소리가, 화면 속에서의 제 움직임이 그걸 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었는지 저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만, 단 한 가지, 그 안에서 무관심이나 외면의 기색이 느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제 저는 선배 기자의 지인을 통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일본의 한 고위직 외교관을 만나게 됐습니다. 취재가 목적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식사 테이블 위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론에 대해 상당히 논쟁적인 대화가 오갔습니다. 분위기가 애매해질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는 차마 얘기하지 못했지만,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재해 자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재해가 발생한 뒤에 가능한 한 빨리 재해 이전의 상태로 사람들의 생활을 되돌리려는 노력이고, 재해 이후 사람들의 생활이 비참하게 망가지기 전에 복구에 필요한 것들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만약 최악의 경우, 어떤 노력이나 궁리를 통해서도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정부는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하고, 사람들의 양해를 구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어쩌면 그때 제 마음 속에서는, 1995년 1월 17일에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라졌던, 동갑내기 일본인 고등학생의 이미지가 되살아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냉정해야 할 기자의 글 치고는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 비난하셔도 할 수 없지만, 지난 고베 대지진과 이번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수십, 혹은 수백만은 될 일본의 1976년생 동갑내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4.11 총선을 앞두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인터넷 선거운동을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결정은 지난 달 말 SNS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93조 1항에 대해 '한정위헌' 결론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이어, SNS에서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재차 인정한 것이어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헌법재판소와 이번 중앙선관위 결정의 취지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선거운동과 홍보가 가능한 인터넷 매체의 특성을 부각시켜 후보자간의 경제적 격차, 즉 정치자금의 격차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반 시민들의 온라인 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가 더 큰 것 같습니다.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관위의 이른바 'SNS 허용'이 이어지면서 트위터 등 대표적인 SNS 서비스 이용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과 함께 많은 기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 속에서도, 아직도 건재한 '철옹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박정근씨 사건 얘깁니다.
사회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정근씨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 내용을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재전송(리트윗)했다는 이유로 지난 11일에 구속됐습니다.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가 적용된 겁니다. 여기서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국가보안법 철폐문제까지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만, 경찰이 박정근씨에게 제출했다는 '압수 수색 영장' 내용을 보면 당국의 SNS에 대한 이해 수준이 그리 깊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내용의 일부를 보면 이렇습니다.
"박정근이 사용하는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4명만 팔로해도 엄청난 파급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유력한 선동매체도구이다. 7월 현재 박정근의 팔로어는 2000여 명을 육박한다."
박정근씨의 팔로어(팔로워)라는 2000여 명은 박정근씨가 재전송한 '우리민족끼리'의 트윗 내용을 보았겠죠. 그런데 과연 그들이 모두 그 트윗을 읽고 '엄청난 파급효과'를 받아 '선동'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법 당국은 '그렇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트워터를 하다 보면 재전송(리트윗)이 전부 '공감이 가는', 혹은 '동의하는' 내용에만 행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리트윗에는 동의의 의미도 물론 있지만 조롱, 반대, 단순한 (증거의) 제시, 첨언 등 여러가지 의미가 혼재합니다. 어떤 의도로 리트윗했는지는 리트윗한 사람의 평소 트윗 내용이나 해당 트윗의 맥락 등을 복합적으로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옵니다. 마치 실제 언어 생활과 흡사합니다. 말은 녹음되지 않는 한 입을 떠나버리면 그만이지만 트위터는 해당 트윗이 다른 사람을 통해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즉 증거가 남는다는 점에서 말보다도 더 신중해야 합니다. 박정근씨의 팔로워가 2000명에 육박한다면, 박정근씨 본인도 트위터의 그런 특성을 모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단순히 북한을 찬양 고무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재전송했을까요? 게다가 박정근씨가 활동하고 있는 사회당은 북한 체제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실토하자면, 저도 북한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대남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를 구독(팔로우)하고 있습니다. 2010년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에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구독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트위터 이용자가 지금처럼 많지 않아서 북한 계정에 대한 제재(?)가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국내에서는 '우리민족끼리' 트위터 계정의 홈페이지 접속이 차단되면서 트위터 팔로워 수도 정체되더군요. 현재 '우리민족끼리'의 트윗 내용을 구독하는 팔로워 수는 만 명이 조금 넘습니다. 팔로워 목록을 보면 대부분 호기심에 팔로잉을 결정한 사람들로 보이는데요, 그럼 이들이 모두 잠재적인 '찬양 고무' 의사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우리민족끼리'를 검색하면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을 통해 프록시 서버로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우회 접속하는 방법까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을 찾아보는 사람들 모두가 북한 체제를 찬양 고무하기 위한 의도를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굳이 '우리민족끼리'를 찾아서 팔로우하실 분들은 없으실테니, 그들이 어떤 트윗을 하는지 살짝 보여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 지상파 방송국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 북한 관영 조선중앙TV를 실시간으로 수신하고 있고, 기자는 해당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가공해 보도할 수 있으니, 방송 기자로 근무하는 제가 이 정도 트윗을 공개하는 것에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실 분은 없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민족끼리 트윗 캡쳐>
'우리민족끼리'는 하루에 6~7번 정도 '몰아서' 트윗을 올리는데요, 대부분이 이런 '공감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설득력도 없어서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타임라인에서 흘러가버릴 정돕니다. 게다가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도 며칠씩 늦게 전송하기 때문에 취재 가치도 크지 않습니다. 지난달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당시에는 관영 TV로 그 '난리'를 치면서도 '우리민족끼리' 트위터는 평소와 다름이 없어서 '진짜 북한 당국이 하는 게 맞나'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을 정돕니다.
운영도 허술합니다. 지난해 1월에는 '우리민족끼리'가 운영하는 유튜브와 트위터, 사이트가 차례로 해킹을 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들 매체에 김정일·김정은을 비방하는 동영상과 글이 차례로 게시되면서 깜짝 놀란 북한 당국이 부랴부랴 사이트 운영을 중지하고 중국에 있는 '운영진'을 강제 소환했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내용도 부실하고 운영도 허술한 '우리민족끼리'에 대한 관심은 정치적 의도라기 보다는 '호기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사법당국은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재전송한 박정근씨에게 '찬양 고무'의 의도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까지 집행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 체제에 반대의사를 밝혀온 박씨가 국가보안법 철폐 논의를 활성화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트윗을 재전송해 사법당국이 이를 문제삼도록 만든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제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자리에서 제가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를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법 당국이 많은 사람들이 SNS를 이용하는 '형태'에 대한 분석 없이, 일괄적으로 오래된 잣대를 들이댔을 때 과연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그 연장 선상에서, SNS의 선거운동을 '허용'한 헌법재판소와 중앙선관위원회가 박정근씨를 '구속'한 국가 권력과 포괄적인 의미에서 같은 권력임을 감안한다면, 두 사건이 어쩐지 좀 이율배반적이고 앞뒤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이 지난 주 자신의 구글 플러스(Google +)계정에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구글 플러스에 있는 슈미트 회장의 계정에 가니 해당 사진이 있었습니다.
슈미트 회장이 게시한 이 사진은 강남 포스코센터 1층의 화장실에 붙어 있는 경구(警句)를 찍은 거라고 하는데요, 용무를 보면서 눈 앞의 경구에 주목한 슈미트 회장은 이 사진을 올리며 간단한 설명을 첨부했습니다. 대락 이런 내용입니다.
"이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사무실에 붙어있던 문구다. 한국인들은 인상깊을 정도로 생산적인데, 그들은 50년대의 처절한 전쟁에서, 경제적 기적을 현실로 이끌어냈다."
슈미트 회장이 사진을 올린 뒤 지난 토요일 몇몇 언론에서 이 사진을 기사화했습니다. 기사는 슈미트 회장이 한국인의 생산성을 언급하며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한국인을 '극찬'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슈미트 회장의 '단상'의 근거가 된 이 글, 즉 "이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기기를 원하는 것은 중요하다"라는 격언은 포스코센터 1층 화장실을 관리하는 포스코 측에서 만든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미식축구 프로리그(NFL) 그린베이 패커스의 전설적인 감독 빈스 롬바르디(Vince Lombardi)가 남긴 격언입니다.
빈스 롬바르디는 1950년대 말에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으로 취임해서 만년 하위팀을 대대적으로 혁신해 명성을 쌓았고, 1966년 미국 풋볼리그(AFL)와 전미풋볼리그(NFL)가 통합된 뒤 1967년부터 열린 챔피언 결정전 '슈퍼볼'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해 '명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프로리그 우승팀에게 주어지는 '슈퍼볼(Super Bowl)'을 아예 '빈스 롬바르디 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이력으로 인해 롬바르디 감독은 스포츠 리더십에 대한 수많은 콘텐츠에서도 단골로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결국 슈미트 회장이 한국인의 '생산성'을 주목하게 한 계기가 된 문장은 원래 미국의 유명한 격언이라는 얘기입니다.
포스코 측에서도 화장실에 게시할 격언을 고르면서 출처를 표시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해당 문구를 구글에서 그대로 검색하면 격언을 모아둔 사이트 여러 곳이 결과로 나옵니다.
물론 포스코도 설마 슈미트 회장이 회사 1층 화장실에서 본 문구를 찍어서 SNS에 올리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죠. 슈미트 회장이 개인적으로 이 격언의 출처를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슈미트 회장의 게시물에도 출처에 대한 언급이 한 마디도 없는 것에 대해 한 국내 네티즌은 '구글 회장도 그 문구의 출처를 몰랐던 것 같은데, 구글 검색 한 번만 했더라면...'하면서 취재를 통해 출처를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국내 언론의 기사 생산 방식을 비웃기도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슈미트 회장의 SNS 포스팅이 기사화됐는지, 한 포털 사이트에서 찾아봤습니다. 슈미트 회장이 찍어 올린 이 문구가 빈스 롬바르디 감독이 남긴 격언이라는 언급은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기사의 유형은 이미 우리에게는 익숙한 것입니다.
관심있는 분이라면 느끼셨겠지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종종 공식 석상에서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 시스템'을 배우자고 열변을 토하는 것이 기사화되곤 하죠. 물론 미국의 유력 인사, 심지어 대통령이 한국을 특별히 언급한 것이 기사로서의 가치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이 한국의 경우를 예로 들었을 때는 본인이 원하는 '특정한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합니다.
그걸 앞뒤 전후의 사정을 다 제치고 '저 큰 나라의 유명한 사람'이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낸 시스템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위험한 자만에 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또 그 자만은 '외국의 유명인'도 칭찬하는 시스템에 공공연하게 '반기'를 드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비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 내부의 비판적 문제제기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언론에 종사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우리를 보는 '외부의 시각'에 지나치게 민감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뭔가 발생하면 '이걸 남들은 어떻게 볼까?'에 대한 일종의 인정 욕구(혹은 인정에의 강박)가 일단 크게 작용하는 겁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대로, 때로는 이런 외부의 시각을 우리의 시각 앞에 둬 내부의 판단과 성찰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결국 남들이 칭찬하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남들이 비난하면 그제서야 분노하는 수동적 언론 문화가 아직도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남'이라는 존재가 대개 서구의 강대국임을 감안하면 어쩌면 우리 언론은 아직도 '언론적 사대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SBS 보도국 뉴미디어부는 딱히 출입처가 없다고 생각하기가 쉬운데요, 사실은 어느 누구보다 방대한 출입처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과 SNS입니다.
오늘은 출입처를 돌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사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1967년 이전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공원의 사진입니다.
양 옆으로는 나무가 울창하게 푸르름을 드러내고 잘 정돈돼 있는 화단 옆으로 산책로가 널찍하게 조성돼 있습니다. 화단과 화단 사이에는 싱그러운 수초를 품고 있는 수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고, 멀리 수로를 가로지르는 하얀 색 다리도 보입니다. 자연스럽게 돋아나 있는 꽃과 풀 사이에 드리워진 나무그늘에는 벤치도 보이네요. 화면 앞쪽에는 한가롭게 휴식을 즐기며 미소짓고 있는 한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단정한 머리스타일의 이 여성은 옅은 옥색의 세련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붉은 색 클러치로 한껏 멋을 냈습니다.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손에 들고 들여다보고 있는 여성은 짙은 감색 스커트와 하늘색 블라우스, 그리고 큰 선글라스를 착용했습니다. 풍성한 금발이 인상적입니다.
사진 속 장소는 어디일까요?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 속 공원일 것 같지만 실은 '아프가니스탄'입니다. 수도 카불의 패그만 공원(Paghman Garden)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진을 한 번 보시죠.
듬성듬성 풀이 난 황량한 벌판입니다. 영어 설명이 붙어 있네요. 좌측부터 시멘트 구조물, 자갈길, 잔디, 다리, 물이라고 돼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두 사진은 같은 곳, 즉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패그만 공원을 찍은 사진입니다.
꽃과 나무, 멋진 수로와 벤치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공원, 여성들이 세련된 차림으로 찾아와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던 공원이 이렇게 황량하고 삭막한 곳으로 변했습니다. 구글 이미지로 사진을 검색해 설명을 보니 두 사진 사이에는 40년이라는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난 40년 동안 대체 무엇이 이렇게 악독한 변화를 가져온 것일까요? 잠깐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위키트리 검색을 참고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고, 냉전 이후에는 미·소 어느 진영과도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비록 북쪽에 소련이라는 강대국을 두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중립적 지위를 고수하며 미·소 양측의 투자를 끌어들여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1960년대 말에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새로 건설된 2차선 도로를 '히피 여행 경로'로 이용하며 오갔다고 하는데, 첫번째 사진이 촬영된 시기가 대략 그때 쯤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979년 4월 정변을 통해 소련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이 종교의 자유와 토지제 개혁, 여성의 참정권 확대 등 사회주의 정책을 확대합니다. 이에 반기를 든 전통 이슬람 세력은 도시를 피해 지방으로 숨어들었고, 미국이 이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면서 긴장이 고조됩니다.
결국 보다 못한 소련이 내정에 개입(서방에서는 '침공'이라고 합니다)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이슬람 세력(무자히딘)과의 지리한 내전이 본격화됩니다. 1980년대 들어 소련 공산주의가 점차 힘을 잃어가면서 아프간에 개입했던 소련군도 1988년에 철수하고, 이에 따라 친소 정권도 몰락하지만 불행히도 평화는 다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무자히딘 내부에도 노선과 지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군벌 내전 상태에 빠져든 겁니다. 이 와중에 이슬람 분파 가운데 가장 완고하고 보수적인 원리주의 세력이 '탈레반(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세력을 키워, 결국 1996년에 수도 카불이 이들에 의해 장악됩니다.
내전에서 사실상 승기를 잡은 탈레반은 점령지역 내에서 폭압적인 공포 정치를 자행하며 정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자비하게 제거합니다. 그 이후의 역사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죠. 탈레반이 급진적 테러세력인 '알 카에다'를 지원해서 결국 9.11사태로 분노한 미국의 보복을 자초하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다시 포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즉, 30년이 훌쩍 넘도록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매일 포성이 울리고, 땅이 뒤집어지고, 나무가 쓰러지고, 누군가는 피를 흘려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 보여드린 초록 가득한 공원의 사진이 더 마음에 사무칩니다. 원하는 옷을 마음껏 차려입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표현하며 한적한 공원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이 여성들의 웃음을, 행복을 무참하게 파괴할 수 있는 권리 따위는 애당초 누구에게도 없었을 겁니다. 사진에 찍힌 이후의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알 방도가 없지만, 여성들이 잠시 머물렀던 이 공간이 40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됐는지를 감안하면, 그들의 삶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단지 멀고 먼 외국의 일일 뿐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능한 한 오래도록 보호하고, 나 뿐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보다 바람직한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 바로 정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총과 칼과 쇠처럼 순식간에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무자비한 폭력이 아닌, 이상을 향한 의지와 실천의 힘…최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로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된 김어준 씨의 베스트셀러 제목이 '닥치고 정치'인 것은, 그 표현의 거칠고 성근 표면을 차치하고라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을 통해 찾아간 아프가니스탄 여성 혁명 연합(RAWA) 홈페이지의 하위 페이지를 소개하면서 짧은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트위터가 지난 주말 네티즌들의 '핫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토요일 오후 나경원 후보의 트위터 계정(@Nakw)으로 다음과 같은 트윗이 잇따라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자, 어떻게 보이시나요?
트위터 사용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어, 뭔가 좀 이상한데?' 하는 의문부터 '이게 뭐야!'하는 당황스러운 마음이 드실 겁니다. 해당 트윗들은 나 후보 홈페이지에 접속한 네티즌들의 '응원 메시지'로밖에 읽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걸 나 후보 본인이 직접 쓴 것처럼 올렸으니, '자기가 다른 사람인 양 말투를 바꿔가면서 자기를 칭찬하는' 민망한 상황이 된 겁니다.
네티즌들은 이 트윗들을 놓고 나 후보의 트위터 계정이 해킹된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담당자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이라는 추정까지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고, 다소 듣기 거북한 별명까지 나오면서 문제가 커지자 나 후보 측은 해당 트윗을 모두 삭제하고 어제 다음과 같은 해명을 트위터를 통해 게시했습니다.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공직자 후보의 공식 선거운동 홈페이지는 다양하고 방대한 콘텐츠로 꾸려지게 마련입니다. 나 후보의 공식 선거운동 홈페이지도 마찬가진데요, 살펴보니 예전에 유행하던 '게시판' 대신 요즘 언론사 등에서 두루 쓰고 있는 이른바 '소셜 댓글'이 설치돼 있더군요.
상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나 후보 측은 아마도 이 소셜 댓글에 달리는 네티즌들의 반응 가운데 (후보에 대해 호의적인) 일부를 선정해 나 후보 본인의 트위터 계정으로 연동해 공개하도록 설정해 놓은 것 같습니다. 나 후보 측의 해명에서 언급된 '계정연동 오류'라는 것은 아마 이 부분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만, 나 후보가 아닌 '선거 캠프'의 공식 트위터 계정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 군색한 변명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물론 홈페이지부터 SNS까지 유세활동에 바쁜 후보 본인이 스스로 관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대개 선거운동을 할 때에는 수 명에서 수십 명으로 구성된 담당팀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개인 이름으로 등록된 SNS 계정을 '관리자가 알아서 하라'고 두는 것은 조금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분들께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제 예를 들어볼까요. 저는 저희 뉴스 트위터 계정(@SBS8news)을 운영하는 담당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공식 계정의 담당자로서 최대한 중립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뉴스트윗을 작성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이름으로 가입한 트윗 계정(@venia76)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계정으로는 제 마음대로 트윗을 날립니다.
그런데, 제가 @SBS8news 계정으로 보내야 할 건조하고 딱딱한 뉴스트윗을 @venia76 계정으로 보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맘씨 좋은 제 트윗 팔로워 분들은 아마 이해해 주실 겁니다만, 그 상황이 '정상적'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트위터같은 SNS는 '계정은 곧 그 사람'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계정이 '이름'으로 돼 있다면, 설사 그 사람이 아무리 유명하고, 권력이 있고, 돈이 많아도 트위터에서는 한 명의 트위터 사용자입니다. 트위터는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런 '보편·평등의 가치'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트위터가 성장하면서 기업과 언론, 각종 단체의 공식 트위터 계정들이 잇따라 등장했지만 사람의 이름으로 된 트윗은 그 사람이 작성한다는 원칙은 아직도 확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최문순 강원도지사(@moonsoonc)는 선거에서 트위터의 영향력을 십분 활용해 젊은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냈습니다. 선거 이후 '진정한 승자는 트위터'라는 분석이 줄을 잇기도 했지만,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은 당시 최문순 후보의 트윗이 '본인이 쓰지 않았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진정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희정 충남지사의 트위터(@steelroot)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권만 예로 들었다고요?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JaeOhYi)의 트위터도 본인이 직접 쓰는 것 같습니다. 띄어쓰기를 전혀 하지 않는 특유의 '고집'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지난 주말 인터넷을 뒤흔들었던 '대리 트윗 논란'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나 후보가 선거 사무소 공식 계정을 따로 만들고, 그 계정으로 위의 댓글들을 추천(리트윗)했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선거캠프의 공식 계정이 나 후보 개인 계정만큼의 영향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겠지만, 적어도 선거캠프의 공식 계정이 있었다면 나 후보 '개인'이 쓰고 있다고 '보편적으로 믿어지는' 계정으로 나 후보에 대한 칭찬글을 올리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을 겁니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연령별 지지율은 '트위터 친숙도'와 대체로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 젊은 유권자들의 '홈 그라운드'인 SNS를 통해 보여줘야 할 것은, 자화자찬이 아닌 '진정성'입니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 SNS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돼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래 글은 방송기자연합회 계간 <방송기자> 가을호 [나를 바꾼 책들]이라는 코너에 기고했습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1년 반 동안 부모님을 모시다가 분가를 하기로 결정했다. 외삼촌이 살고 계시는 경기도 김포 근처로 부모님이 이사하기로 하고, 나와 아내는 그동안 모아둔 돈과 부모님의 도움을 보태, 회사와 가까운 문래동에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전세로 계약할 돈을 마련했다. 새 집은 방이 세 개, 화장실이 두 개, 둘이 살기엔 제법 쾌적했고, 제일 윗층에 자리 잡은 덕에 야경이 볼 만 해서 아내와 나는-비록 전세일지라도-기분이 꽤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뿌듯한 것은, 안방으로 쓰일 큰 방과, 온갖 자질구레한 물건과 계절이 지난 옷들을 쌓아두는 창고 용도로 쓰일 작은 방 외에, 남은 방 하나를 온전히 ‘책방’으로 꾸밀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테리어 업체를 수배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으로 보이는 벽을 모두 책장으로 꾸몄다. 창문 아래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책상 옆으로 컴퓨터와 전등, 스피커를 설치했다. 책장에는 결혼 전 내가 갖고 있던 책과, 결혼 전 아내가 갖고 있던 책과, 결혼 후 둘이 각자의 취향대로 사들인 책들이 작가별, 장르별로 책장에 가지런히 꽂혔다. 대학 시절의 전공 서적과, 철지난 잡지들, 영어 수험 서적들은 이사를 하면서 거의 버렸는데도 책장은 꽉 찼다. 족히 5백 권은 넘어 보였다. 이사한 뒤, 한동안은 그 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괜히 기분이 좋아 정작 마음먹었던 독서는 못하고, 킬킬거리면서 책 제목만 눈으로 훑어보며 휴일을 보내기도 했다.
보름 전 난데없이 ‘나를 바꾼 한 권의 책’(혹은 ‘책들’)이라는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퇴근한 뒤에 책방에 들어가 봤다. 그리고 말없이 양쪽 벽을 메운 책장을 천천히 바라보며 눈에 띄는 책들의 내용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대부분의 책들은 ‘내가 (멋대로 내용을) 바꾼 책들’이 되어 있었다. 이건 이런 내용, 저건 저런 내용, 그건 들춰볼 가치도 없는 내용……. 저자가 알면 화를 버럭 내도 좋을 불경한 생각들 속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간신히 한 권의 책을 골라 들 수 있었다. 그래도 최근 10년 사이에 내 곁을 스쳐간 책들 가운데 내 맘대로 내용을 바꿔놓지 않은 책. 그러므로, 반대로 ‘나를 바꾼’ 이라는 수식에 현재로서는 가장 어울릴만한 책. 바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한겨레신문사,2003)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2003년 11월 4일이었다. 당시 근근이 글을 써 올리며 ‘회원 자격’을 유지하던 인터넷의 한 문학 동호회에, 책을 읽자마자 설익은 감상을 써 올린 글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날짜를 기억한다. 당시 나는 뭘 해도 어설프기만 한 2년차 기자였고, 수습생활을 마치고 좌충우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회부 말진 시절을 거쳐, 일약 문화부 기자라는, 실로 얼떨떨한 명함을 10개월 넘게 쓰고 있었다. 홍대 정문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는 미술학원 밀집지역 언덕 위에서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반지하방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고, 근무가 없는 주말이면 친구들 앞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폭탄주를 자랑하듯 선보인 탓에 급격히 살이 찌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 정도면 잘 풀린 축’에 드는 삶이라고 자위했고, 그나마 그런 어설픈 생각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문득문득 엄습하는 허무함을 견딜 수 없어 힘이 주욱 빠져버릴 것 같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그날 나는 지금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들어간 서점에서 이 책을 산 뒤, 회사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아이템 회의 시간을 기다리던 책상 앞에서, 서강대교를 터덜터덜 건너 돌아온 자취방 침대 위에서 읽어 내려갔다. 자정을 넘겨 핥듯이 마지막 장을 읽고 난 뒤에는 입사 뒤 실로 오랜만에 ‘소설’을 단숨에 독파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읽어야 할 온갖 보도자료와 신문, 잡지들의 홍수에서 기적적으로 일궈낸 성공적인 독서였다.
그것은 이 소설이-조금 과장을 보탠-‘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구도(球都) 인천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이른바 ‘일류대’ 학생으로 보낸 젊은 날, 그리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당연한 듯이 투신한 약육강식의 사회로 이어지는 성장 과정을 거쳐, 얼떨떨하기만 한 ‘프로’의 세계에서 고민하고 상처입은 주인공의 마음이, 꼭 그때의 나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설의 후반부, 즉 주인공이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껍데기 같았던 아내와의 결혼을 정리하고, 남양주 인근 북한강가에서 친구와 함께 야구를 시작하는 그 모습에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책을 덮은 그 새벽에, 예의 인터넷 문학 동호회 게시판에 이렇게 썼다.
그들(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는 프로에 이름을 올리기엔 뭣한,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인 야구였다, 고 작가는 말한다. 잡을 수 없는 공은 잡지 않고, 칠 수 없는 공은 치지 않는다. 그리고 1승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정신수양’으로서의 야구다. 눈에 보이는 모두가 '프로'를 외치던 시기였고, 그래서 계속 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건 절대 비운이 아니었다고 얘기한다. 이기기 위해 무리하고 자신을 깎아오던 야구판이, 즉 우리 사회가 결국 얻은 것은 너덜너덜한 관계와 약육강식의 흉악한 이빨…. 그것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실하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 오지 않았는가. (중략)
그래서, 조금은 후회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는가. 왜 그들처럼 스스로 선택한 패배 속에서 평화를 얻지 못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연히도,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내던진 통쾌하고 깔끔한 평화를 얻지 못했다. 다만 결과와 관계없이 ‘조급해 하지 않는 것’이 ‘프로’의 세계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나를 보호하는 길임을 깨달았고, 눈 뜨면 코 베어간다는 이 세계에서도 어디 한 구석 작은 숨 쉴 곳을 두는 것이 생존의 요령이고 교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소소하지만 또 한 가지, 승패와 관계없이 야구를 진심으로 즐기게 되었다.
지난해 방송기자연합회 체육대회를 기억한다. 나는 실력과 관계없이 야구를 좋아한다는 선후배들을 모아 어찌어찌 팀을 꾸리고 ‘총무’를 맡았다. 우리의 첫 경기는 미처 유니폼도 맞추지 못해 모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각자 쓰고 온 모자에 박힌 로고도 제각각이었다. 배트와 포수장비도 급조했다. 상대는 정말 ‘프로’처럼 회사 로고가 박힌 45인승 버스를 타고 와, 검은 색 스포츠 고글에 깨끗한 유니폼을 입은 모습으로 차에서 차례대로 내린 뒤 그라운드에 정렬해 일사불란한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그야말로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기업체 동호회인 ‘프로 올스타팀’과 오합지졸 외인부대인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이 만난 격이었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우리는 누가 봐도 ‘감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비록 경기에 임한 우리 팀의 마음가짐이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삼미 정신’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하얀 공을 쫓아 달리고 마음껏 배트를 휘두르던 순간의 해방감은 그것 그대로 소중한 것이었다. 시끌벅적한 뒷풀이의 소란 속에서, 나는 잠시 이 책을 떠올렸다. 그리고, 굳이 우승 따위 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방송기자연합회의 소박한 체육대회는 올해도 열린다고 한다. 2년 연속으로 야구 종목도 예정돼 있다. 올해도 우리는 그라운드에 나간다. 다행히 이번에는 유니폼도 맞췄다. 풀 옵션으로 새로 뽑은 파란 가을 하늘에, ‘까앙~’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뒤따라 하얀 공이 조용히 포물선을 그리는 그 멋진 장면을, 올해도 기대한다. 아무려면 어때. 항상 이겨야 한다는 무언의 억압에서 벗어나면, 인생은 꽤나 괜찮은 것이다. 자, 플레이볼!
우리나라의 IT 경쟁력 지수(IT Industry Competitiveness Index)가 19위로 떨어졌다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어제(28일) 각 언론에 보도됐습니다. 사무용 소프트웨어연합(BSA)이 이코노미스트 인텔레전스 유닛(EIU)이라는 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2011 전세계 IT 산업경쟁력 보고서'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각국의 IT 관련 연구개발(R&D) 환경, IT 비즈니스 환경, 산업발전 지원도, 인프라 등의 세부 항목에 대한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이번 조사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60.8점을 기록해 뉴질랜드에 이어 19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같은 조사에서 우리나라가 지난 2007년에는 3위였다는 사실입니다. 햇수로 5년 동안 무려 16계단이나 급속 추락한 겁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IMF 구제금융 체제 조기졸업 이후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성장동력으로 손꼽히던 IT 산업이 언제 이렇게 됐나, 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각 언론이 분석한 순위 추락의 이유는 이렇습니다. 연구개발(R&D) 환경 부문 지표가 IT 특허 출원 숫자의 감소로 2009년 8위에서 12위로 하락한 것, 그리고 IT 인적자원 부문 지수가 2위(2009년)에서 4위(2011년)으로 떨어진 겁니다. 정부가 관련된 IT 산업 발전 지원 부문의 순위는 2009년에도 28위, 올해도 28위로 어차피 높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측면을 볼까요.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관련 전략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재야의 IT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전자정부 전략이 과연 성공적이냐는 질문에 회의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종이문서를 없애고, 전자결제 시스템을 만드는 기본 전략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략을 구현하는 실제 적용 단계에서 특정 운영체제를 편애하고, 보안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이런저런 소프트웨어적인 방어막을 만들어 시스템 전체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버린 부분을 특히 비판합니다. (굳이 전자정부가 아니더라도, 은행 거래 한 번 하기 위해 수없이 설치되고, 스스로 업데이트되는 액티브 X기반의 보안프로그램을 보면 가끔 소름이 돋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충분치 않은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개발인력이 밤잠 설쳐가며 만들어 특허를 내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IT 산업 경쟁력이 이제는 그 '약발'을 다했고, 그나마 일부 공적 영역에서의 '절반의 성과'에 기대 간신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라는 우울한 가설도 가능한 게 아닐까요.
그런 가운데, 오늘(29일) 주요 언론들은 삼성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반(反) 애플 연합전선'을 크게 다뤘습니다. 스마트 기기에서의 애플과 운영체제에서의 구글을 견제할 전략적 합종연횡이 성립됐다는 분석입니다만, 그 이면에는 '특허 분쟁'을 최소화하자는 양측의 이해가 맞물린 결과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삼성은 싼 특허료를 MS에 내고, MS도 그정도 선에서 분쟁을 접겠다는 거죠.) 애플·구글이라는 거대 공룡에 맞서 싸우기도 힘든 상황에서 '추격자'들끼리 힘을 빼는 일은 막자는 것일텐데, 전세계를 상대로 벌어지는 'IT 전쟁'은 이미 현실이므로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하는 거대 기업들의 전략을 탓할 마음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번 삼성-MS의 '포괄적 파트너십' 체결의 산파로 다름아닌 정부가 거론된 것입니다.
(사진제공_청와대)
지난 23일 미국 시애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MS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조찬회동을 가졌습니다. 보도를 보면 이 자리는 '빌 앤 멜린다 재단' 이사장인 빌 게이츠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효과적인 국제원조를 위한 공동 협력방안을 제안하고 이 대통령이 이에 화답하는 자리였습니다만, 이 회동 이후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과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자가 '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관련 내용도 조찬 테이블에 화제로 올랐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다소 거친 제 생각입니다만, 정부는 거대 기업들의 전략적 합종연횡을 '서포트'하는 것보다,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국내 산업에 양분을 대고 보살펴,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올려야 합니다. 이미 국경을 뛰어넘은 거대 기업들은 어떻게든 스스로 살 길을 모색해 가겠죠. 그러나 대기업의 울타리 밖에서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정책 하나, 규제 하나에 사업을 계속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을 강요당할 수도 있는 수많은 IT 기업가와 개발자들을 다독이고 격려하고 소통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눈 앞의 이익이 아닌 '창의적 아이디어'가 싹트고, 그 아이디어가 오래도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로 구체화되는 토양을 가꾸고 유지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5년만에 16계단으로 '폭풍 추락'한 우리의 IT 경쟁력 지수는, 출범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들고 나온 이 정부가 그동안 일을 어떻게 수행해 왔는지를 측정한, 냉정한 성적표입니다.
뭐, 거창하게 일본 정치를 예측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거대문화담론을 건드리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이제 곧 7개월을 앞둔 마당에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가 궁금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주 잡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일테고, 복잡한 상황을 내맘대로 해석하는 오류도 가득할 것. 그러니 혹시라도 번쩍이는 통찰과 묵시록적인 예언을 기대하셨다면 패스하시길.
다른 자리에서 몇 번 입에 올린 적이 있는 얘기인데다, 현지 취재 직후 취재파일(링크)로도 쓴 얘기지만,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치료탑·치료탑 혹성] 연작이었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환경오염으로 더이상 기존의 고도성장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인류는 종족의 생존을 위해 지구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전세계의 모든 자원과 기술을 한 데 모아 대탈출을 감행한다. 우주의 한 행성을 제2의 지구로 삼기로 결정하고, 선택받은 인류 '대표'가 떠나고 난 지구에서 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모색해 나간다. 보다 소박하고, 자율적이고, 고요한 삶에 '2등 인류'가 익숙해질 무렵, 그들을 지구에 남겨놓고 떠나갔던 인류 대표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데...
무슨 공포 SF물같은 요약이지만 연작 소설의 내용 전체가 중요한 건 아니고, 동일본 대지진 이후와 어느정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하고 내가 생각했던 부분은 소설 속에서 '2등 인류'가 선택했던 삶의 방식이다. 주창자인 야나기타 시게의 이름을 따서 'YS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다음으로 요약된다.
<고도한 것은, 보다 고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어려운 것은 보다 쉬운 방향으로>
<복잡한 것은 단순한 방향으로>
<불필요한 설비나 장식이 붙어있는 것은, 평범하게>
<세련은 적(敵)>
<목표는 원시적인 유용성>
<장래 희망은 소규모 수공업으로 분산화하는 것>
소설 속에서 인류가 '떠난 자와 남은 자'로 나뉘게 된 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지구에 남은 '2등 인류'는 한정된 공간과 자원 속에서 스스로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심플 라이프'를 택한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일본사회의 변화를 밖에서 지켜보고 있으려니, 소설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런 '심플 라이프'를 향한 움직임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런 움직임은, 불행히도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한 낭만적인 시대정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몇 가지 키워드로 생각을 정리했다.
<절약·절전>
후쿠시마 원전사태가 직접적으로 불러들인 현상은 '절전'이다. 멀쩡히 잘 돌아가던 원자로가 삽시간에 가동이 중단됐으니 당장 써야 할 가용전력이 부족한 것. 초기 제한송전, 지역별 순번 정전단계는 벗어난 듯 하지만, 사회 전반에 '절전'은 여전히 큰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어쩌면 '절(節)'자는 올해의 한자로 등극할 수도 있으리라. 전기가 부족하면 생산도 뒤처질테니, 절약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어쩔 수 없는 절전·절약의 강요에 사람들은 점점 지쳐간다.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답답함이 스물스물 분노를 키우고, 그 분노는 결국 적당한 출구를 찾아 분출할 기회만을 노리게 될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정치적 불신, 나아가 불복종이 아닐까.
<여행의 증가>
단기와 장기,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여행이 늘어난다. 여행은 잠시나마 피폭을 피할 수 있는 단기적 대안인 동시에 지진해일 이후 침체된 지역사회를 능동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효율적인 기분전환 방안으로 여러 계층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진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가능하면 일본에서 멀리, 가능하면 편서풍과 해류의 영향이 적을 것으로 생각되는 호주나 뉴질랜드 등 남반구 지역, 혹은 미국 동부쪽으로 장기 여행(혹은 체류)을 떠난다. 중산층은 비교적 사회가 안정적인 유럽이나, 적은 돈으로도 휴식과 요양을 만끽할 수 있는 동남아를 선호할 가능성도 있다. 장기·장거리 해외여행이 어려운 계층은 가까운 한국, 중국으로 잦은 여행을 떠나거나, 규슈, 오키나와 등지로 국내 여행을 하기도 한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엔고 현상이 공항으로 향하는 이들의 발길을 재촉한다.
<서브컬쳐의 심화>
대지진과 원전 사태 전에도 일본의 서브컬쳐는 콘텐츠의 양과 깊이 측면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지진해일로 수만 명이 숨지고, 해일이 물러간 이후에도 몇 달째 방사능 피폭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욱 커질 수도 있다고 본다. 신문/방송 등 주류 콘텐츠는 계속 '비상시국'을 외치고, 이에 따른 피로감도 더해 간다. 그래서, 이른바 오타쿠 문화가 더욱 안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 현실의 팍팍함을 잊으려하는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세계관으로 자리잡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쯤 일본에서 생산되는 서브컬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다. 과연 누가, 무엇을 만들고, 누가 이것을 소비하는지 말이다.
<극우파의 득세>
동일본대지진 같은 거대한 자연재해를 '함께' 경험한 일본 사람들은, 대체로 평온한 다른 국가, 다른 민족에 비해 동료의식을 더 크게 느끼지 않을까? 동료의식은 '왜 우리만 이렇게 당해야 하나'라는 억울함과 맞물려 극우세력을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마침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했고, 민주당 정권은 사태 해결과 대안 제시에 우왕좌왕하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물리적인 폐허를, 정신적인 쇼크를 보상할 대상을 찾는 사람들은 내적으로 단결해 대안을 찾게 된다. 영토분쟁에서 완고한 자세를 유지하고, 자국 문화를 잠식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 지극히 배타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런 가운데 독도와 댜오위타이는 여전히 분쟁중이고, 도쿄 도심에서 '한류' 반대시위가 거칠게 일어난다. 야스쿠니 참배에 찬성하고 망언을 한 전력이 있는 정치인이 수상에 오른 것은, 집권 민주당도 이런 분위기를 그냥 보아 넘기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일종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수도 정비 얘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건데, 쓰나미 직후부터 다시 거세게 터져나오고 있다. 과연 에반게리온의 '제3신도쿄시'가 현실화되는가...설마했던 수도권 피폭이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하반기 들어 수도권의 피폭 상황에 대한 정보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치따위, 아무도 믿지 않는 듯. 지진의 위험이야 어차피 상존하는 것이었으니 이제 남은 건 가능한 한 피폭지역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이다. 그냥 사람만 옮기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공간을 통째로 옮기는 것, 즉 수도 이전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터져나올 것이다.그러나 현재의 약한 기준치를 정부가 고수한다면, 천도 움직임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계속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인데, 어찌 수도를 옮기자는 말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의원들이 제출할 '부수도 정비' 입법안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일본 축구 여자대표팀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월드컵에서 우승했습니다. 독일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일본팀은 그간 상대 전적 3무 21패를 기록던 '세계 최강' 미국팀을 만나 전·후반 1:1, 연장 1:1의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3:1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대망의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결승전은 우리 시간으로 월요일 새벽에 있었습니다. SBS를 비롯한 각 방송은 월요일 아침부터 저녁뉴스까지 이 이웃나라의 경사를 전했고, 신문은 하루 지난 오늘(화요일)자 조간에 조금 늦게 관련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오늘 아침 사무실에서 신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일본팀의 우승 기사를 훑어보다가 눈길을 끄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일본 선수들은 주요경기를 앞두고 대지진 피해 영상을 보며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자'고 결의를 다졌다."(C일보 기사)
"(전략) 그때마다 그들은 대지진 피해 영상을 함께 보며 결의를 다졌고, 인터뷰에서 '결코 포기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H신문 기사)
"쓰나미 영상 보며 이 악문 그들…포기란 없었다"(D일보 4면 제목)
제가 가진 의문의 핵심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일본 선수들은 정말로 바닷물이 제방을 넘고, 도시가, 거리가 사정없이 물에 휩쓸려가는 '쓰나미 영상'을 보면서 전의를 다졌던 걸까요? 아무리 피해가 크고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절망감이 만연했다고 해도, 말 그대로 '쓰나미 영상'만으로 전의를 다지는 게 가능했을까요? 어쩌면 '쓰나미 피해 지역'의 주민들이 '우리 선수들, 힘내세요!'라고 하는 일종의 '영상 편지'를 보면서 힘을 낸 건 아니었을까요? 언론이 '쓰나미 지역 피해 주민들의 응원 영상'을 앞뒤 다 잘라내고 '쓰나미 영상'으로 보도한 건 아니었을까요?
약간의 검색, 그리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외신을 살펴보며 상황을 파악해 본 결과, 제 뜬금없는 의심은, 현재로서는 결국 틀린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선수들은 정말로 '쓰나미 영상'을 보면서 '피해 주민들에게 힘을 주자!'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 대표팀이 준준결승에서 개최국 독일을 격파한 지난 11일 일본 아사히 신문의 기사(http://www.asahi.com/sports/fb/TKY201107110017.html)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전략) 시합 직전의 미팅. 기분을 고조시키고, 전술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일본 대표팀의 사사키 노리오 감독은 대표팀이 4강에 들었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이번 대회의 득점 장면과 함께 동일본 대지진의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말했다. "우리들의 플레이가 지진 피해자들의 힘으로 이어진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분들을 생각해 힘을 내자."
준준결승에서 강호 독일을, 준결승에서 우승후보 스웨덴을 제친 일본팀을 다룬, 미국 ESPN의 기사(http://espn.go.com/sports/soccer/news/_/id/6771891/women-world-cup-underestimate-japan-your-own-risk)에서도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팀의 가장 큰 자산은 '동기 부여'였다. 미국팀이 1999년의 영광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일본팀은 지난 3월 동부 지역을 강타한 지진 해일을 딛고 일어나려는 조국에 기쁨을 가져다 주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중략) 독일전에 앞서 (사사키 감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선수들에게 일본 동북지역의 파괴된 이미지들을 보여줄 뿐이었다."
우승 직후 일본 언론의 보도를 보면, '국민에게 힘을 주겠다'는 선수들의 기특한 소망은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쓰나미 피해 지역의 주민들이 "축구선수들의 선전에 힘입어 (피해 복구에) 자신을 갖게 됐다"고 말한 인터뷰 내용이 곳곳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입니다. 참 다행스럽고, 잘된 일입니다.
결국 저는 이웃나라의 경사에 의심을 한 줄기 걸친 셈이 됐습니다. 마음속으로나마 재를 뿌려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표현에 끝내 눈길을 준 것은,그저 기사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스포츠와 연결된 국가주의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 비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우리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월드컵에서 선전을 펼치면 열을 올리며 응원하는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금 변명을 하자면, 축구선수들의 선전을 바라보는 개개인의 시선이, 개개인의 시선으로 머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즉 국가 전체로-확대되는 것에는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개 미디어와, 정부의 시각에서 이뤄지는 그런 식의 '확대 재생산'은 오히려 선수-관중의 순수하고 소박한 커뮤니케이션을 정치적으로 왜곡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이 그랬고, 박찬호-박세리선수의 선전을 접했던1997-8년의 우리나라도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솔직히 그런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박 선수의 선전은 축하할 일이었고, 힘든 IMF 구제금융 시절에 청량제는 됐지만, 그걸로 금융사태를 일으킨 집단에 대한 책임 추궁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처럼요.)
덧붙여 저는 훌륭한 운동선수들이 일구어낸 결과가 국민 모두에게 동일한 효과를 준다고 '확신'하거나, 좋은 소식을 접한 국민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가질 거라고 '기대'하는 일방적인 시선에는 의심을 표하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선전에는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그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적어도 '일단은' 개인의 차원에서 감상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결과가 제 개인의 인생과 세계관에 어떤 좋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건 제가 얼마전 이 자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국민이 아니"라고 트위터에 올린 어떤 고위 공직자의 생각을 비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도 지난 3월 쓰나미 직후 일본 이와테현에 취재를 다녀왔습니다만, 그곳에서 만났던 현지의 주민들이 모쪼록 힘을 내서 삶의 터전을 다시 일으켜 세웠으면 합니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앞으로 빨라야 3년 걸린다는 잔해 제거를 하던 그들이, 비록 몸은 힘들더라도 월드컵 우승에 대한 감상으로 잠시나마 웃음꽃을 피우면서 단 며칠이나마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월드컵에서 우승했다고 누군가 그들이 치워야 할 쓰나미 잔해를 대신 치워주는 것은 아니듯, 때로는 가혹한 현실을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왜곡하고 정당한 불만과 문제제기를 노랫가락에 덮어 무마하려는 누군가의 시도에는 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