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09 15:59

아는 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달 초 야구경기를 하다가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골절됐고, 별거 아닐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손가락뼈를 바로잡은 뒤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까지 받게 됐다. 항공편이며 호텔 예약을 취소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수술부위 실밥도 뽑지 않은 채로 휴가를 다녀왔고, 지난 주 귀국한 뒤에 드디어 실밥을 풀었다.


현재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라는 걸 받고 있다. 뭐 대단한 치료는 아니고, 뜨거운 파라핀 용액에 손을 담궜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는 온열 치료다.


오늘도 출근 전에 병원에 들러 물리치료를 받다가(내가 하는 거니까 '하다가'?) 사진을 찍어 보았다.




안경점에 흔히 있는 초음파 안경 클리너(?) 같은 수조에 파라핀 용액이 데워져 있다. 손 전체를 용액에 담궜다가 5초를 참은 뒤(처음엔 상당히 뜨겁다.) 꺼내 8초간 굳힌다. 이걸 약 예닐곱 번 반복하면 손을 감싼 파라핀 용액이 층층이 굳는다.




설탕 크림같은 느낌이다. 손목 부분은 벌써 떨어지려고 한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 식기를 기다린 뒤 손목부터 장갑을 벗듯 살살 벗겨 나간다. 손에는 열로 인한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어서 파라핀이 피부에 달라붙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파라핀 뭉치를 손바닥 위에서 조물조물. 네 번째 손가락이 아직 제대로 말을 듣지 않으므로 마음처럼 덩어리를 뭉치기가 힘이 든다. 이걸 하는 게 사실 목적인 것도 같다. 




완성된 구형 파라핀 덩어리. 잘 만들려고 노력하다보면 저절로 손가락 운동이 된다. 이렇게 두 덩어리를 만들고 나면 물리치료 끝. 


치료사가 "생각보다 잘 만드셨네요."하면서 웃었다. 어떤 아이는 이걸로 '하트♥'를 만들어 모두를 놀라게 했다고 하는데, 나는 뭐 그런 창의성은 없는 것 같고, 가능한 한 이상적인 구(球)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나저나 잘 뭉쳐진 파라핀은 대리석 같기도 하고, 엄청나게 달콤한 팥앙금이 든 찹쌀떡 같기도 하다. 이 녀석들의 최후는? 다시 파라핀 용액 속으로 풍덩!


그나저나 재활에 힘써야 다시 야구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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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5/07 20:54

아내와 함께 일주일 여정으로 프랑스에 다녀왔다. 


처음 닷새는 파리에서 여느 관광객들처럼 관광명소를 돌아다녔다. 샹젤리제와 개선문, 사이요궁과 에펠탑, 베르사이유 궁전과 오르세 미술관, 몽마르트 언덕과 노트르담 성당, 마레 지구와 뤽상부르 공원…비록 좀처럼 얼굴을 보이지 않던 태양과, 지나치게 자주 찾아오던 비바람, 그리고 프랑스 현지에서도 말이 많았던 이상 저온현상으로 기대했던 만큼 기분을 내지는 못했지만 아내와 나는 동양에서 온 흔한 관광객으로 파리를 꽤나 즐겼다. 적당한 쇼핑과 카페놀이도 포함해서.


그리고 마지막 이틀은 동남부 몽블랑 근처에 자리잡은 그르노블Grenoble로 이동해 그곳 대학에서 공부하는 회사 선배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나 회포를 풀고, 저녁을 함께 먹고, 호텔에서 하루 쉰 뒤에 마지막으로 앙시Annecy를 둘러본 뒤 출국할 예정이었다. 그르노블에서 벌써 몇년 째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던 선배 덕에 알찬 시내 관광을 마치고 그 지역 음식 퐁듀로 저녁을 배불리 먹은 뒤 숙소에서 푹 쉬고 나온 날-그러니까 앙시로 이동하기로 한 날, 그르노블 기차역에서 만난 선배가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던지기 전까지, 우리는 누가 뭐래도 앙시로 가서 물 맑기로 유명하다는 호수를 산책하고, 아주 조용히 둘만의 휴가 마지막을 즐기려던 참이었다.


"오늘 노동절이라 어딜 가도 다 쉴텐데, 앙시에서 뭐할래? 호수 보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을텐데?"

"그래도 일단 가기로 했고, 기차표며 호텔 예약까지 다 했는데요…."

"기차 예약이야 취소하면 되고, 호텔도 마찬가지 아냐?"

"에이, 그래도 선배 부담되니까…."

"그러지 말고 생각 다시 해봐. 내 친구네 집이 완전 시골인데, 나도 가끔 놀러가거든? 거기 안갈래? 자고 내일 바로 출발해."


알고보니, 선배는 이미 우리 부부를 친구-이름은 에릭-집으로 데려가기로 해 놓고 친구와 말을 맞춰놓고 있었다. 선배가 그르노블 역에 온 건 우리를 환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고, 노동절을 맞아 버스며 트램tram이 모두 운행을 중단하는 바람에 선배를 역에 데리고 온 것도 다름아닌 에릭-과 그의 오래된 시트로엥 자동차-였다. 


그럼, 못이기는 척.


호텔은 부킹닷컴booking.com을 통해 최저가로 예약을 마친 터라 환불과 변경을 할 수 없는 조건이었기 때문에 과감히 포기했다. 그르노블 역에서 앙시행 TER 기차표를 취소하고, 짐을 모두 에릭의 자동차 트렁크에 실었다. 선배의 자취방에 잠시 들러 간단한 음식물을 챙겨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에릭의 집으로 향했다. 동네 이름은 '생 뽈 드 바르스St. Paul de Varces'였다.





이렇게 해서 얻어 탄 에릭의 자동차. 원래 뒷좌석은 겨우내내 에릭의 집에서 기르는 말-이름은 휴디-가 먹을 건초를 근처 목장에서 사다 나르느라 지푸라기 투성이였다. 에릭은 "This is French life."라면서 약간 미안한 듯 얘기했지만, 어디가나 부담을 주기 일쑤인 여행객에게 그런 사과는 필요없었다. 그르노블 인근 고등학교에서 프랑스어와 역사지리를 가르치는 교사인 에릭은 한국에서 프랑스인 가정으로 입양된 30대 초반의 남자. 큰 덩치에 안 어울리는 수줍은 미소와 조금 어색한 영어가 어딘지 모르게 우리 마음을 편하게 했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선배와도 친해 보여서 안심했다. 


그르노블 시내를 벗어나자 에릭은 빠른 고속도로 대신 시골길로 차를 달렸다. 동네 사람들이 '벨 돈belle donne'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산맥-이 산맥의 끝자락에는 유명한 몽블랑이 있다-이 시원하게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는 소박한 길이었다. 에릭은 중간에 잠시 차를 멈추고 차창 밖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여행객들에게 사진을 찍을 시간을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파리에서도 보지 못했던 화창하기 그지없는 날씨. 노동절 휴일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기라도 하듯, 시골길 하이킹에 여념이 없는 동네 주민.




3시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 구름에 정상이 살짝 가리워진 '벨 돈'이 시야에 가득찬다. 몽블랑은 멀어서 보이지 않지만 아직도 정상 근처는 만년설로 하얗게 반짝인다. 그르노블 인근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벨 돈을 볼 수 있다. 


가던 길을 마저 재촉해 생 뽈 드 바르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에릭의 집에 도착. 에릭의 동거인은 예순이 넘은, 그러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을만큼 정력적인 그의 어머니 아닉Annick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말 휴디와 고양이 다섯 마리, 개가 다섯 마리, 셀 수 없는 비둘기-우리나라와는 달리 웬만한 방 하나 크기의 새장에서 기른다-까지 에릭네와 함께 산다. 




에릭네 집 전경. 지붕 한 가운데 뚫린 창 안쪽이 에릭의 동생-지금은 다른 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로라의 2층 방이고, 우리는 저 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배낭에서 꺼낸 과자를 우걱우걱 씹어 먹던 휴디. 당나귀는 아닌 것 같은데, 말 치고는 작은 종인가보다. 나이는 열 살이 넘었다고 한다.




개들의 경계도 잠시. 오스트레일리안 셰퍼드인 '샤흐디'는 어느새 발치에 다가와 쓰다듬어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이녀석은 다소 산만하지만 역시 사람을 잘 따르는 꺄라이브. 개들이 일단 큼직큼직하니 만지는 손맛(?)이 있고, '어이구 이녀석!'하면서 툭툭 쳐도 오히려 더 좋아한다. 




늑대를 닮긴 했지만 다리가 많이 짧은 이녀석의 이름은 질리였나? 사진은 좀 무서운데, 순하기는 마찬가지. 장난이 가득한 표정이다.




아닉 아주머니와 함께 비둘기 새장으로 먹이를 주러 간다. 개들이 큰 엉덩이를 흔들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이 집의 왕초 고양이. 그래도 사람 손을 거부하지는 않더라. 




갑작스러운 에릭의 제안이었을텐데도 먼 곳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 아닉 아주머니가 이런저런 마실 거리를 꺼내 마당의 식탁에 놓아주셨다. 아주머니는 프랑스어 외에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아셔서 단어 몇 개로 우리와 대화하는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아닉 아주머니는 집 주변을 참 예쁘게 가꾸어 놓았다. 소박한 풍경이지만, 곳곳에 꼼꼼한 관리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닉 아주머니는 물론 개, 고양이들과 잠시 친해진 뒤 선배와 우리 부부는 뒷산 산책길에 나섰다. 에릭은 다음 날 수업 준비를 해야 해서 따라가지 못하겠다며 또 특유의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했다. 


마침 5월 1일은 프랑스에서는 물방울꽃 축제fête du muguet의 날이라고 한다. 삼삼오오 가족과 함께 생 뽈 드 바르스의 뒷산을 찾은 동네 사람들이 하얀 물방울꽃을 저마다 손에 들고 휴일을 즐기고 있었다. 뒷산이라고는 해도 바위가 툭툭 튀어나온 꼭대기는 꽤 높아 서늘한 광경을 연출했는데,




이런 뒷산에, 




이런 숲이 울창하고, 




이런 산길이 고즈넉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가볍게 땀이 날 정도로 산책을 하고, 작은 개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다시 내려왔다. 중간에 개울을 건널 때에는 이끼가 낀 바위가 미끄러워 잠시 고생을 했으나 다행히 넘어지거나 풍덩 빠지지는 않았다. 약간의 어드벤처를 뒤로 하고 다시 마을로.





오후 늦게 다음날 수업준비를 마친-틀림없이 후다닥 해치우지 않았을까-에릭과 함께 근처의 조금 큰 마을 바르스Varces에 갔다.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에 오래된 성당이 있고, 성당을 돌아 오르는 언덕길 오른쪽에는 마을 사람들의 묘지가 있었다. 언덕 정상에는 바르스 마을 전체를 굽어보는 투박한 성모상이 자리잡고 있었다. 


휴일인 탓도 있었겠지만, 마을 전체는 늦은 오후의 정적과 평화로 가득했다. 시간도 분위기를 맞추려는 듯 덩달아 느릿느릿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작은 새의 지저귐과 여울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만이 배경음으로 낮게 깔렸다. 산에서 마을로 내리 깔리는 공기는 서늘하고 달콤했고, 어딘가 모르게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 냄새가 났다. 




바르스 마을의 오래된 성당.




성당을 오르는 작은 길. 바닥은 시멘트로 깔고, 손잡이도 만들었지만 벽은 예전 그대로인 듯.




성당 앞 공터에서 만난 포토제닉 고양이.




성당 지붕 너머로 보이는 바르스 마을의 뒷산.




동산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바르스 마을. 에릭은 이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을 내려다보는 성모상. 층층이 석재를 쌓아 올린 뒤 조각을 해서 '유적'이라고는 하기 어렵지만, 특유의 소박함이 잘 묻어나는 성모상이다. 유명 관광지에서 보는 매끈한 대리석 성모상보다 오히려 더 마음을 잡아 끄는 데가 있다. 


바르스 마을에 오게 될 줄은,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우리가 아닌가. 아무런 계획도, 사전 준비도 없이 흘러가는 하루가 보통의 여행에서라면 꽤나 불안하고 답답했겠지만 눈앞에 자분자분 드러나는 프랑스 시골마을의 풍경은 그런 걱정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어쩌면 진정한 여행이란 기차 시간표와 기념품 상점이 아니라, 이런 작은 길 모퉁이와 개울가, 문득 눈이 닿은 풍경 속에서 조용히 자기를 알아봐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해가 뉘엿뉘엿 산을 넘어가면서 아주 조용히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요리는 에릭이 만들었고 나와 아내, 선배는 지하 식료품 창고에서 가져온 양파와 마늘, 올리브와 레몬을 적당히 자르고 썰어 그를 도왔다. 아닉 아주머니는 새 냅킨을 꺼내고 샴페인을 준비하고 식기를 정돈했다. 모두가 조금씩 도와가며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개와 고양이들은 놀아주지 않는 사람들이 야속했는지, 아니면 원래 저녁시간이면 그렇게 하는지 식탁 테이블 아래, 거실 소파 위, 혹은 어디든 정해진 자기의 자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채소를 볶고, 계란을 삶으며 요리 삼매경에 빠진 에릭과, 




놀아 주는 사람이 없어, 갑자기 심심해진 개들. 




시크하기 이를 데 없는 고양이 미시시피의 증명사진급 표정. 뒤는 테이블 세팅중인 아내.




모험심 강한 '빌리'는 이미 밤 마실 채비를 마치고 창문 밖에서 대기중이다.




맛있는 저녁식사. 샐러드도, 요리도 모두 신선하고 맛있었다. 샴페인을 살짝 걸치고, 거기에 꺄시스cassis(블랙커런트)로 만든 술을 타서 마셨다.




라비올리ravioli와 곁들인 이 요리는 볶은 야채와 생선살을 함께 익혀 레몬즙으로 간을 했다. 에릭은 레몬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조금 쓴 맛이 난다며 부끄러워했지만, 우리는 아주 맛있게 먹었다. 뒤에 꺄시스를 섞은 샴페인은 거의 비워졌다.




미리 치밀하게 섭외를 해도 이렇게 즐겁게 보내기 어려웠을 하루를 우리에게 선사한 아닉 아주머니와 에릭. 그리고 소박한 프랑스 농가 모습 그대로 간직한 그들의 멋진 집. 이들에게, 또 이들을 소개해 준 선배에게 어떤 감사의 말을 해도 모자랄 것 같다. 


다음날은 비가 왔다. 우리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에릭의 차로 그르노블 역에 이동해 리옹Lyon역까지 TER로, 리옹역에서 샤를 드 골 공항까지 TGV로 이동한 뒤 오후 1시 35분에 이륙하는 에어프랑스를 타고 귀국했다. 만약 처음의 계획대로 앙시에 갔더라면 왠지 조금 아쉽게 끝났을지도 모를 프랑스 휴가, 그 마지막에 우연과 호의가 겹친 행운 가득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 프랑스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 새벽, 에릭의 차를 타고 역으로 이동하는 도로 안에서 삐걱대는 와이퍼 소리와 함께 듣던 음악. 아직 덜 깬 새벽잠과, 휴가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다소 우울했던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던 Al Green의 Let's stay together. 한국에 도착해서 정확히 일주일 만큼의 먼지를 뒤집어 쓴 차를 공항 주차장에서부터 몰고 집으로 오는 아침에 아이폰을 카오디오에 연결해 멜론 스트리밍으로 다시 들었지만, 바로 하루 전의 그 느낌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나, 서울은 소음으로 가득하다. 싫고 좋고를 떠나,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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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4/19 16:47





올해 LPGA에 데뷔한 재미교포 윤혜나 선수를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다. 윤 선수가 버디에 성공할 때마다 제일병원에 저소득층 불임부부 치료를 돕기 위한 성금을 기부한다는, 훈훈한 내용이다. 


아침 신문에 실린 이 기사가 인터넷에는 어떻게 나왔는지 보자.





인터넷 커뮤니티 '불펜'에서 얻은 캡쳐본이다. 아침 신문에 실렸던 기사가 오후 3시 18분에 최종수정된 걸로 돼 있다. 제목을 보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인터넷에서 손님을 끌 만한 자극적인 단어와 표현으로 제목을 '마사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네이버 뉴스캐스트에도 올렸다고 한다. 손님 끄는 게 목적이니 당연히 뉴스캐스트에도 올렸겠지.


손님을 끄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 항의와 조소, 비난도 만만찮았나 보다. 해당 기사의 제목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수정됐다. 어떻게 변했나 보자.






제목이 다시 평범해졌으니, 당연히 조선일보 뉴스캐스트에서는 빠졌다. 30분 남짓한 저열한 제목 장사, 얼마나 쏠쏠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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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4/03 16:46





버스커버스커 1집의 타이틀곡 '벚꽃엔딩'. 

벚꽃 날리던 어느 봄. 그때의 어리고 미욱했던 나와, 그때 친하던 모든 사람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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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5 16:16



어느 분의 그림인지 모르겠습니다. 문제가 된다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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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3/13 20:10

(사회당 덕후위원회의 '코나타기'/출처 : 네이버, 아니 루리웹)
*코나타는 '럭키☆스타'의 이즈미 코나타*



어젯밤에 아내랑 와인 한 병 까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예전 사회당에 '덕후위원회'라는 게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마 '정당투표는 진보신당 줄까?' 하는 주제의 얘기를 하다가, '근데 진보신당은 사회당이랑 통합했는데 뭐가 좀 변한 게 있나?'하는 얘기로 발전한 뒤 홍세화 대표와 박노자 교수 얘기가 잠시 나왔다가, 그 김에 문득 아이폰 켜서 검색해 본 결과에 우연히 얻어 걸린 듯하다. 

이익집단의 정치참여는 민주주의가 가동하는 근본적 동력 가운데 하나다. 덕후가 스스로 정치세력화해서 자집단의 이익을 주장하며 정치를 한다는 것에는 하등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다만,  그 '이익'이 남보기가 좀 뭣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덕후위원회는 몰락했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었을까, 싶지만.)

사회당 덕후위원회와 관련해 구체적인 건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나온다.  (검색결과 클릭)

뭐, 아무튼 '덕후 위원회'의 존재도 알았겠다, 덕후들이 정치세력화를 고민까지 한 이 개명세상에 엄연한 선거권을 가진 한 명의 '민주 시민'으로서 내가 '아, 이거 좀 정치력으로 해결해 줬으면…'하는 것이 뭔지를 가만히 생각해 봤다. 

아참, 아내와 술상을 벌려놓기 전에 나는 사실 TV를 좀 봤다. 늦은 저녁을 먹고 문득 보고 싶어져서 미국 드라마 The West Wing S01_01을 DVD로 봤고, 그 뒤에는 차인표가 나오는 '힐링캠프'를 잠시 봤다. 웨스트윙은 90년대 드라마여서 DVD의 화질도 최신 미드에 비하면 많이 딸렸다. 힐링캠프에는 차인표의 예전 드라마 출연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됐는데, 역시 지금의 기준으로는 화질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은근히 술기운도 좀 오른 김에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거린 단어는 '고해상도 정치연대'였다. 여덟 글자를 쓰는 사이 술기운이 더 올랐는지 영어로 'HD solidarity'라고 친절하게 국제화까지 고민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았다. (작성 시간 봐라, 가관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HD-High Definition-은 '고화질'이다. 해상도는 레졸루션resolution으로 쓰니 '고해상도'라면 High Resolution이 맞는거다. 영어로 끄적거린 메모 내용은 한 마디로 틀렸다는 얘기.)

아무튼, 나는 '고해상도 정치연대'가 '고화질 연대' 보다는 어감상 더 좋다는 입장이므로, 이를 기준으로 뻘생각을 점점 넓혀본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해상도'를 검색(결과 클릭)하고 읽어가다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모니터 해상도는 한 화면에 픽셀이 몇 개나 포함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으로, 대개 가로의 픽셀 수와 세로의 픽셀 수를 곱하기 형태로 나타낸다. 곧, 1,024×768는 가로 1,024개, 세로 768개의 픽셀로 모니터에 나타낸다는 표시이다. 같은 해상도라도 크기가 작은 모니터에서 더 선명하고, 큰 모니터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므로 선명도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옳거니!

같은 해상도라도 크기가 작은 모니터에서 선명하다. 큰 모니터로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므로 선명도가 떨어진다. 해상도는 고정돼 있다는 것이 전제이므로, 그렇다면 "사회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고정돼 있는 해상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따라서 '고해상도'는 다름아닌 사회의 선명도를 더욱 높이기 위한 방법론을 의미한다.정치권은 '고해상도'를 외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에게 '고해상도 정치연대'를 허하랏!

하이 레졸루션의 정신은 딴 거 없다.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정치, 그것 뿐이다. 음습한 밀실에서의 공천과, 권력 나눠먹기를 목적으로 하는 야합은 일절 필요없다. 하이 레졸루션의 깃발 아래, 훌륭한 정치는 물론 뻘짓마저도 선명하게 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행위자도, 추종자도, 반대자도 모두 각자의 목적을 선명하게 정치판에 투사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고해상도 정치연대'의 궁극적 목적이다.

'고해상도 정치연대'의 깃발로는, 형평성을 고려해 '고해상도'를 구글 '이미지'로 검색했을 때의 첫 사진으로 정하기로 한다. 바로 이거다. 불만은 없으리라 본다.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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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3/08 16:17
네이버 엔드라이브에 들어가보니 예전에 아이폰으로 찍어둔 사진들이 가득했다. 언제 여기다 옮겨놓았을까. 
그중에 몇 장을 다운로드받아서 블로그에 올린다.

사진은 주로 2009년, 2010년에 광화문 정부청사 출입하던 시절 자동차로 회사에 돌아오면서 찍었다. 
구름이 아름답던 오후의 하늘이 많다. 



이건 미사리 근처에서 찍은 사진. 군인들이 참가한 스카이다이빙 대회였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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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3/08 14:01



포스 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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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3/07 17:26




사실상 명작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는 일본드라마 야마토 나데시코(2000, 후지TV)의 명대사. 
이게 왜 명대사인지는 설명이 좀 필요한데...

남자 주인공(사진의 남자, 츠츠미 신이치)은 보스톤에서 수학을 전공한 천재지만 생선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가업을 이어받고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보살펴드리기 위해 학자로서의 창창한 미래를 포기하고 생선을 파는 남자.
 
여자 주인공(사진의 여자, 마츠시마 나나코)는 가난한 어릴적의 기억을 뒤로하고 고향을 등진 뒤 자수성가해, 엄청난 부자를 만나 결혼해 유복한 생활을 꿈꾸는 속물 스튜어디스. 

둘은 우연히 친구들이 주선한 미팅에서 만나는데, 남자의 재력과 신분을 여자가 오해하면서 잠시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지다가, 여자가 남자의 가난을 알고 매정하게 차버리는데…  

그러다가, 남자의 대학시절 친구 오카모토가 결혼을 해서 남자는 피로연에 참석하고, 여자도 어떤 인연으로 같은 자리에 오게 되는데, 여기서 남자가 인상적인 피로연 연설을 하는 것이 바로 위의 내용. 

사실 이 장면에서 마츠시마 나나코의 표정과 연기가 참 좋은게, 자기가 한 번 차버린 남자지만 인간으로서 남자를 다시 한 번 '좋은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는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부(wealth)가 중요하다고 늘 말하고 다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얘는 그런 애야'라고 생각해버리지만, 진짜 속마음은 재산과는 관계없이 자기를 정신적으로 고양시키고 안정시켜줄 사람을 찾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게 표정에 잘 녹아 있다는 것.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다가 그리운 대사를 만나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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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
2012/03/05 19:19



소설을 읽고 기사를 고민하다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으로 친숙한 작가 김영하가 새 장편을 냈다. 지난 해 초 김영하가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의 죽음과 관련된 논쟁으로 트위터를 그만두면서부터 나는 오히려 이 작가에 새삼 관심을 갖게 됐다. 팟캐스트에서 그가 소개한 책을 하나 둘씩 사 모으고, 그가 직접 쓴 소설을 하나 둘씩 읽어가면서 다소 건조하고 무심한 문체와 치밀한 취재,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호기심을 꾸준히 유지하며 나름의 소설세계를 확고하게 넓혀가고 있는 그에게 무언의 지지를 보내게 됐다. 아내가 <빛의 제국>을 읽는 사이에 신작에 대한 정보를 보고, 예약구매로 손에 넣어서 지난 주말에 읽었다. 제목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

책을 만지작거리면서 펼치지는 않고 있다가, 중앙일보 토요일자에 실린 신간 소개와 작가의 인터뷰 기사(클릭)를 먼저 읽고 말았다. 대개 책 대신 소개 기사를 먼저 읽고 나면 독서 자체는 '망쳤다'는 생각으로 끝나기가 쉬운데, 막상 책을 다 읽은 뒤에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작가가 설명하는 자신의 소설과, 내가 읽은 소설이 사뭇 다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노 오펜스.

먼저 신간 소개 기사를 인용한다. 대강의 내용은 이걸로 파악할 수 있다. 

주인공 제이는 탄생과 동시에 버려진 고아다. 길고양이마냥 험난한 노숙 생활을 하며, 사회로부터 버림 받은 또래들과 어울린다. 스스로 고아이기를 택한 동규는 제이와 운명을 결탁한 인물이다. 한때 함구증(緘口症)을 앓았는데, 제이는 그런 동규의 속내를 읽어냈다. 훗날 목소리를 회복한 동규는 제이의 길바닥 인생에 합류한다. 제이는 폭력적인 사회에 폭력으로 맞선다. 동규를 비롯한 고아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들이 잃어버린 사회적 목소리를 대신 외치고 싶었던 게다.

 

다음은 기자의 e메일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다. 질문은 굵은 글씨.

-고아가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한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다. 『검은 꽃』의 이정, 『퀴즈쇼』의 민수가 그랬다. 『빛의 제국』의 기영 역시 낯선 땅에서 스스로 습득한 규칙과 정보에 따라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정신적 고아들에 대한 관심인가.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산책을 나간 개와 주인과 비슷하다. 때로는 개(작품)가, 때로는 주인(작가)이 앞선다. 정신적 고아들이 등장하는 소설들은 내가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 나를 끌고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구상한 소설인가.
"5년 전쯤 9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정신의 사각지대에 있는 소년과 그가 보냈을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취재에 나서자 실제로 그런 소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작가의 '성실함'이랄까, '직업정신'이랄까, 그런 거다. e메일 답변에서 작가가 "취재에 나서자 실제로 그런 소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언급한 부분이, 실은 소설의 전부다. 소설의 장면 장면이 신문 사회면의 기사에서 한 번쯤은 다뤄졌을 만한 내용이고, 작가는 그 사건과 사건을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엮어낸다. 사건 사이의 공백은 작가의 상상으로 메워진다. 상상이 어떤 질감을 가졌는지, 또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는 읽는 사람의 몫.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미 이런 사건들을 추수때 볏짚가리 모아 잡듯 움켜쥐고 소설을 이끌어나간 작가에게 불만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자, 한 번 보자.

1. 어딘가의 공용 화장실에서 기르지도 못할 아이를 낳은 미성년자
2. IMF 이후 마약의 나락으로 떨어져버린 소시민
3. 방화인지 실화일지 모를 지방 농장의 화재와 비극적인 결말
4. 신촌과 대학로, 서울역에서 먹고 사는 가출 청소년
5. 장애 수급자를 인질로 잡아 지원금으로 먹고사는 불량 가족
6. 성을 파는 가출 청소년들, 여자아이들을 사는 중년 남자들
7. 매년 3.1절과 광복절 새벽을 장식하는 폭주족들의 광란의 질주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었던 것들이 아닌가.

김영하는 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꼼꼼하게 그러모아,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스토리를 짜고 거기에 자신의 색을 입혔다. 그래서인지 김영하의 이번 소설은 최근 몇몇 언론이 시도하고 있는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확장 증보판으로 읽힌다.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영리하다. 기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붙잡아 앞뒤로 늘리고, 위아래로 펼친 것이다. 그리고 그걸 떠받치기 위해 '허구'라는 (역설적이지만) 탄탄한 심지를 박아 넣었다. 이건, 매일 스쳐가는 사회면 구석의 기사들에 집중하고, 이를 단초로 '취재'를 통해 스토리를 짜는 '작가'의 '집요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자도 물론 '집요함'이라면 당당히 명함을 내밀(어야 하)지만, '파헤침' 뒤에 필요한 '통찰'은 작가에 미치지 못한다. 

안그래도 소설에 잠깐 기자 얘기가 나온다. 기자 '집단'에 관한 내용이다. 

언론사의 취재차량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대폭주가 끝난 다음에나 법석을 떨었다. 매년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줄 알면서도 언론사들은 취재인원을 배치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경찰청에 나간 출입기자들이 경찰로부터 검거 인원과 단속 상황을 브리핑받고 단신으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광복절 전야에 몇몇 신참기자들이 출입 경찰서 '형님'들의 긴장된 움직임을 데스크에 보고했지만 취재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대학생과 시민단체는 쉰 명만 모여도 카메라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한 자리에 고정돼 있는데다가 이슈도 중산층이 관심을 가질 법한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림'이 잘 나오도록 피켓과 촛불을 들고 한 자리에 앉아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폭주족들은 따라잡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그림도 안됐다. (p.214-215)

 
틀린 말 하나 없다. 

그러고보면 기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기사를 '소설 썼네'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제를 이제 바꿔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기사를 써야 하니까 그렇지, 나도 소설 쓰라고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공허하게 외치는 이른바 '내러티브 저널리즘' 시대의 기자들-물론 나를 포함해서-에게, 이 소설이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소설은 기사를 향해 이렇게 공격적으로 다가오는데, 기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뭐,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지만.










**신간 소개 기사로는 경향신문의 이 기사가 무난하다. 제목은 좀 아닌 것 같지만.
[경향신문] "인간의 괴물성이라는 것이 분출하는 10대들 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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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jyoo